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와 아이들 (문단 편집) === 기성세대와의 갈등 === [[서태지와 아이들 3집|3집]]부터는 단순한 음악적인 시도를 뛰어넘어 사회문제에 대한 곡을 써내려가며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현재 최고의 자리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말 그대로 가요계의 끝판왕이 갑자기 노선을 바꾸어 사회적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에 이는 당연히 파장이 컸다. 통일을 노래한 '발해를 꿈꾸며'까지는 다들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았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는 노래인 '교실 이데아' 활동이 시작되자 매스컴과 기성세대, 높으신 분들은 그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 시작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민중가요]]라는 사회 비판적인 가요가 대학가나 시위현장에서 많이 불려졌기는 했고, [[김광석]]이나 [[양희은]] 같은 유명가수들도 민중가요를 불렀기는 했지만 1990년대 중반 기준으로는 청소년 취향의 음악은 아니었고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청소년 취향에 맞는 음악이면서도 전국적으로 파급력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즉, 최신음악에다가 민중가요적인 색채를 어느정도 혼합한 시도였었는데 이것도 히트를 치면서 불편해진 기성세대가 많아지게 된 것. 다만 이렇게 갈등이 커진것은 전두환 말기때부터 시작해서 김영삼 시기때까지 이어진 [[교복부활]]의 영향도 컸다. 1980년대에 전두환 정권이 [[3S정책]]의 일환으로 교복을 일시적으로 폐지하고, 두발규제도 완화했지만, 얼마 안가 학생지도에 어려움이 있다고 교복부활 및 두발규제 강화를 학교장 재량으로 재실시하게끔 허가를 내주었는데, 이 때문에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각 학교에서 교복을 다시 입히는것이 유행이 되었고, 두발규제도 다시 원상복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 때문에 당대의 청소년들 입장에서 몇년전까지 자율로 알아서 입으려했다가 학교에서 바지나 치마를 줄여입었다고 체벌을 가하고, 두발도 군인처럼 빡빡깍으라 해대는 학교도 많아졌으니, 사실상 주었다 뺐는 격이 되었고, 이것이 세대갈등이 커진 이유가 된 면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직접 부른노래는 아니었지만 [[DOC와 춤을]]이라는 노래가 히트를 쳤던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던것이었다. 3집의 이러한 시도는 대중성을 많이 포기한 대신, 충성스러운 매니아 팬들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작 서태지와 아이들은 파격적인 음악(락)과 가사로 인해 3집 당시 방송 금지를 받았고, 사실상의 3집 활동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지상파가 거의 유일한 홍보 수단이었던 시기 그 당시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으나, 이것은 오히려 서태지와 아이들, 특히 서태지가 뮤지션으로서 영원할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대중은 다른 가수들, 10대·20대 가수들에게도 음악성과 함께 비판적인 가사 등을 다루어 줄것을 요구, 또는 비교 하게 되었다. 오히려 서태지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 하던것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구가 하지 않은 1, 2집이었음에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대중이 서태지를 기억하던 시각은 인기와는 별개였던 것이다. 이것은 90년대 아이돌 그룹들이 사회 비판적인 노래를 부르는 데까지 영향을 준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최고의 그룹으로 불리는 [[H.O.T.]]의 앨범을 보면 [[SM Music Performance|꼭 하나씩 그런 내용의 노래가 들어간다.]]] [[서태지와 아이들 4집|4집]]의 타이틀곡이었던 '[[Come Back Home]]' 같은 경우, 그 곡을 듣고 가출을 했던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http://m.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980|뉴스]]까지 나왔을 정도. 이후 이 앨범의 일부 수록곡들의 가사 문제로 판매가 금지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가출 청소년들의 부모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판매 금지가 부당하다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는 심지어 21세기 아이돌인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행보에도 영향을 주었다. 후술하겠지만, 실제로 외국의 케이팝 전문 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언급하는 부분이다. 그 당시 신문, 방송들을 보았을때, 심지어 서태지를 다룬 인간시장에서도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단순한 서태지의 랩음악에 대하여 '''파괴적이고 위험하다'''라며 적개심을 드러 내었는데, 당시 언론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행보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매 앨범, 컴백 마다 달라지는 음악과 패션등에 대하여 머리색깔, 의상, 음악 스타일, 가사 등을 문제 삼으며 집중 포화를 쏟아 내었다. 참고로 1990년대는 신문이 구독률 70%에 육박하던 시절로 영향력이 대단했고 3대 방송사들도 광고시장의 성장에 따라 매년 매출액 신기록 달성을 하던때였으며 그나마 대항매체라 할수있는 [[PC통신]]은 비싼 요금과 느린 속도로 파급력이 미약했는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사회에 울림을 주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위상이 어느정도로 대단했는지 알수있다. '''언론이 띄워줬기에 성공한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틀린 이유다.'''[* 반대로 [[https://www.seotaiji-archive.com/xe/index.php?mid=taijimania_memorial&search_target=extra_vars2&search_keyword=1%EC%A7%91&category=356960&document_srl=357794|언론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즉 서태지 등장 직전 NKOB가 거하게 사고를 쳤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관심을 한국의 대중문화로 돌리기 위해 서태지에게 상당히 편의를 봐 준 것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0년도 이후, "한류", 또는 "K-POP"의 선봉으로 개인적인 처신 문제외에 큰 제약을 두지 않고 오히려 "국위선양"의 이미지 까지 가지고 가는 현재의 아이돌 활동과는 천양지차로 다른 것이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했을때와 K-POP이 세계적으로 흥행했을때랑은 언론의 위상이나 세계적인 파급력에 있어서 환경이 천지차이로 달라진것도 감안은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중반 ~ 2010년대에도 똑같이 발생했다. 2007년 [[원더걸스]]의 Tell me가 대히트하며 한국 음악계는 아이돌들이 점령[* 원더걸스 이전에도 [[동방신기]] (2003년 데뷔), 슈퍼주니어 (2005년 데뷔) 등의 보이그룹이 인기를 끌었지만, 대중음악계에서 주류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아이돌이 한국 음악의 메인스트림으로 떠오른 분기점은 원더걸스와 빅뱅, 그리고 [[소녀시대]]가 히트곡들을 낸 이후이다.]하게 되었는데, 일부 기성세대들은 아이돌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한국 음악은 망했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주된 레퍼토리는 '외모로만 뽑혀서 실력이 없다'[* [[연예 기획사]]에서는 아이돌을 뽑을 때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력도 같이 본다.], '립싱크하느라 입만 벙긋벙긋하는 것들이 무슨 가수냐'[* 2세대 아이돌들은 립싱크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음악방송에서 춤을 추며 라이브까지 잘 소화했다.], '다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이는 해당 그룹을 처음으로 봐서 잘 익숙치 않기 때문에 다 똑같이 생겼다고 여기는 것이다.], '떼거지로 몰려나온다'[* 이 비판은 그룹형 가수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서 기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등등이었는데, 악플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생기기 이전이라 당시 아이돌들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위의 각주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기성세대들이 2세대 아이돌들을 비판한 주요 레퍼토리는 거의 대부분이 편견에 기반한 것이다. 이후 2010년대 중반에 들어 3세대 아이돌들이 등장하자 2세대 아이돌들을 좋아한 세대들이 3세대 아이돌들을 비판하는 일이 늘어났는데, 이들이 3세대 아이돌들을 비판하는 주된 원인은 '과도한 팬덤+해외 활동 위주의 전략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의 대중성이 부족하다' 등 사실상 [[팩트폭력]]에 가깝다. 심지어 이들이 3세대 아이돌들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2세대 아이돌들의 전성기였을 당시 유치원생~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어린 나이였던 2020년대 기준의 10대들도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류의 핵심 동력은 드라마[* [[겨울연가]]와 [[대장금]]의 대히트 이후 언론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대인기라고 대서특필을 했지만 2000년대 내내 막장 드라마들이 최고 시청률을 찍는 바람에 한드의 질이 크게 하락해 버렸다. 한국 드라마가 다시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은 2012년 TVN의 [[응답하라 1997]]이 히트하면서부터이며, 이후 JTBC와 TVN이 명작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드라마 한류도 재개되었다.]도, 게임도 아닌 케이팝이었고, 케이팝이 인기있는 이유는 아이돌이었다. 기성세대가 그토록 바라던 한국 문화의 세계화는 그들이 사랑하는 '진짜 가수'가 아니라 아이돌들이 이루어냈다. 그리고 빌보드 주간 차트 1위를 찍은 가수는 나훈아가 아니라 방탄소년단이었다. 아이돌을 그렇게나 비난하던 기성세대들이 방탄소년단의 성과를 보고는 180도 태도를 바꿔 '케이팝의 훌륭함'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덤이다. 비틀즈마저도 초창기에는 기성세대의 미움을 받았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대중문화의 흐름은 10~20대가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즈를 들으며 자랐던 세대들이 서태지를 비난하고, 서태지를 좋아했던 세대들이 아이돌들을 비난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